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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공부

럼의 역사와 특징 공부

by 술과 함께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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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즙 또는 당밀 등의 제당 공정 부산물을 발효, 증류시켜 만든 증류주. 달콤한 냄새와 특유의 맛이 있다.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와 마찬가지로 증류주이기 때문에 사탕수수로 만들긴 하지만 단맛이 나지는 않는다.

 

역사

원료가 원료이니만큼 한때 진이나 보드카처럼 저렴한 술이었고, 태생이 태생이다보니 아직도 싸구려 이미지가 짙지만, 정작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은 칵테일 베이스용 저가 화이트 럼이 아니면 고급 다크 럼들이다. 이런 이미지는 주요 소비층이 뱃사람, 특히 상선사관이나 해군 장교 같은 이들이 아니라 하급 선원이나 수병, 어부, 해적 같은 하류계층이기 때문에 생겼다.

럼의 기원은 서인도 제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의 확대와 함께 그 부산물을 이용한 주조법이 확산되는 17세기 초 바베이도스 섬에 증류기술을 가진 영국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외 네덜란드 사람들의 증류법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문헌상으로는 1650년경에 바베이도스에서 쓰여진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다. 당시 삼각무역의 중요한 상품 중 하나였으며 Rum이라는 이름도 당시 원주민들이 이 독한 술을 마시고는 취해서 흥분(Rumbulion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킬데블이라고도 불리다가 1667년부터 럼이라는 표현이 정착되었다. 그 외에 당류 전반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인 '사카룸(saccarum)'의 끝 세 글자를 따온 것이라는 설도 있다.

싸고 강렬한 술이라서, 험난한 바다를 돌아다니는 선원이 많이 찾았다. 게다가 18세기 범선 항해에서는 상비품이었다. 식수를 보존할 기술도 증류할 기술도 부족하던 이 당시엔 항해를 오랫동안 하다보면 물이 썩기 때문에 식수를 대체할 수분 보충 수단으로 술을 보관했는데, 원래는 맥주, 브랜디, 와인, 위스키를 가리지 않고 비축했다. 그러나 맥주와 와인은 값은 저렴해도 알콜 도수가 낮아서 오래 못 갔고 반면에 브랜디와 위스키는 장기 보관은 가능했지만 비싼 제품이었기 때문에, 값이 싼 독주인 럼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루하고 괴로운 항해에서 선원들은 독한 술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러다보니 선원이나 해적 등 뱃사람의 상징처럼 굳어졌다. 가장 결정적으로 이 당시엔 배 안에서 왕이나 마찬가지에다, 육지에서도 상류층으로 통하던 함장이나 상선의 선장도 항해하는 동안엔 물을 마시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렇다고 물이 썩지 않게 끓여 마시기엔 연료도 부족했고 화재위험이 있어서 쓰기 힘들었다. 결국 상황이 이러하니 장기 보관이 가능한 술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해군 수병들에게 맨 처음 럼을 보급한 집단은 영국 해군이었다. 초기에는 럼을 그대로 보급했다가 독해서 수병들이 쉽게 취하는 문제가 생기자, 여기에 적당량의 물과 설탕, 레몬 혹은 라임 즙을 섞어서 보급을 했다. 여기서 유래한 칵테일이 그로그(Grog)이다. 물을 섞는 양은 처음에는 네 배였지만 나중에는 다섯 배까지도 갔다. 물을 썩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맛이 간 물을 그나마 먹을만하게 만들려고 술 타서 만들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그로그에 라임 또는 레몬을 넣은 이유는 괴혈병 방지를 위함이었다. 비록 당대의 과학 수준 상 비타민 C의 존재는 알 수 없었지만 레몬을 먹으면 괴혈병을 방지할 수 있다는 연구와 경험들을 반영하여 괴혈병 방지를 위해 처음에는 레몬을 지급하였다. 하지만 곧 라임이 레몬을 밀어냈다. 이는 라임도 괴혈병 치료 및 예방 효과가 탁월한 데다, 라임은 카리브와 인도, 동남아시아 등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대량 재배되어 레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거기다 마침 주스 제조 기술이 개발되어 과거보다 훨씬 쉽게 오랜 기간 보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라임 주스는 매우 시큼하면서 쓴맛도 있어 단독으로 마시기는 어려운 데다, 사회에서는 마음껏 먹기 어려웠던 빵과 고기 그리고 술을 양껏 먹는 것을 낙으로 삼던 선원들이 선상에서까지 시고 향이 강해서 먹기도 힘든 데다 가난한 집에서 어린 아이들이나 먹이는 싸구려 식품이라는 인식이 있던 과일을 먹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괴혈병에 걸려서도 라임 주스 섭취를 거부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때문에 영국 해군에서도 이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선원들이 선호하는 식품이자 라임과 조합 시 아주 좋은 맛과 향을 내주는 술과 설탕을 섞어서 선원들에게 지급했던 것이다.

이렇게 라임을 섭취하면 괴혈병의 예방 및 치료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밝혀지고 술과 설탕 그리고 다양한 재료들을 배합할 수 있게 되자 럼+라임+설탕 베이스에 박하 등 다양한 재료들을 더한 칵테일들이 선원들에 의해 등장하게 됐다. 하사관과 준사관에게는 그로그가 아닌 순수한 럼이 지급되는 특혜가 있어, 이들 중 술을 안 마시는 경우 지급 받은 럼을 모아뒀다 외부 업자 혹은 같은 승조원들에게 내다 팔아 부수입을 챙기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영국 해군 장병들이 라임과 럼을 달고 사는 것을 보고 영국 자국민들 사이에서 영국 해군 장병들을 라이미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곧 과일을 빈자들 혹은 어린이들 혹은 여자들이나 먹는 것으로 여기던 유럽 대륙인들과 미국인들 사이에서 영국 해군 장병을 넘어 영국군 장병 전체, 더 나아가 영국인 전체를 경멸적으로 부르는 멸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19세기 말까지 영국군과 험악한 관계를 유지하던 미군에서 영국군을 어린이 혹은 여자 같은 놈들이라며 라이미라고 부르며 깔보던 경향이 강하게 존재했다.

이렇게 영국군을 라이미로 부르며 경멸하던 미군은 20세기 초까지는 보급으로 나오는 혹은 집에서 보내온 위스키와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었으나, 제1차 세계 대전 무렵 음주 군기가 강화되며 술을 마시기 어려워졌고, 1920년대 금주법 시대가 시작되며 술 보급이 모두 끊기고 아예 술을 마실 수 없게 됐다. 때문에 영국군이 럼에 라임 주스를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는 동안 미군은 각종 탄산음료나 초콜릿, 사탕류, 과자류 등 정말로 어린이들과 여성들이 좋아하는 간식들을 대량으로 보급받아 입에 달고 다니게 됐다. 술을 끊으니 더 풍요로워졌다

이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들이 영국군과 접촉하여 이런 간식들과 피복, 고기 통조림, 손목 시계, 커피, 설탕 등을 넘기고 럼을 받아와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휴가 장소가 아니면 술 마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군 혹은 프랑스군과 물물교환으로 받아온 혹은 독일군에게서 약탈해온 술은 미군 장병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특히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미 해군의 경우엔 육군처럼 어디서 몰래 구해오거나 얻어 마실 데도 거의 없으니 럼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영국 해군을 접촉하면 각종 기호품과 교환해서 럼을 얻으려 혈안이 되었다. 일선 함정들이 영국 해군 함정들과 접촉하여 술을 구해온다는 걸 알게 된 미군 상층부에서 술 반입을 더더욱 철저하게 통제하자 이번에는 아예 영국 해군 함정을 방문해서 진탕 마시고 돌아오는 사례들이 속출했다. 영국 해군이 공식적인 술 배급을 중단한 것은 1970년대라 세계대전 이후에도 술 관련으로 미 해군과 사연들이 많았다. 영국군 또한 전시에 경제 꼴이 영 아니게 된지라 보급 우선 순위가 높은 군에도 군것질거리들이 쪼들렸기에, 미군이 이거저거 싸들고 와서 술이랑 바꾸자면 기꺼이 거래에 응했다.

참고로 럼이 처음 보급될 당시 값싸고 도수가 높은 증류주 중에는 진도 있었지만, 당시 영국 내에서 진에 만취한 하층민 알콜 중독자들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진을 마시면 인생이 파탄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때문에 군 당국은 진을 보급하려고 하지 않았고, 장병들도 진을 싸구려 저질 술이라 인식해서 환영하지 않았으며, 실제로도 당시의 진은 정말로 맛도 품질도 없는 저질이 넘쳐났다. 결국 나중에는 진도 해군 내 보급품이 되긴 했는데, 해군용 진은 일반 진에 비해 도수가 높은 Navy Strength이었다.

1808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는 총독이 럼을 팔지 못하게 했다가 분노한 군인들이 반란(Rum Rebellion)을 일으켜 총독이 쫓겨나기도 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전사한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유해를 영국으로 운구하여 돌아올 때, 부패를 막기 위해 럼이 들어있는 통에 시신을 담아서 돌아왔다. 이 때 피가 번져서 럼의 색이 붉게 되었는데, 이걸 블러디 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붉은 빛의 럼은 블러디 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일화 때문에 럼 자체를 '넬슨의 피(Nelson's Blood)'라고도 부른다.

이에 대해 "넬슨 제독의 시신을 담았던 럼은 알콜에 목마른 수병들이 조금씩 훔쳐 마셨고. 그래서 영국에 도착하자 정작 통에 럼은 없고 시체만 있었다."라고 전해지는 도시전설이 있다. 보통 이렇게 알려져 있긴 하고 80년대에 출판된 양주 안내서에도 등장하는 이야기다. 실제로는 귀환하는 동안 제독의 시신을 담은 통이 사령관 침실에 안치되어 문이 잠겨 있었고, 문 옆에 무장한 해병이 24시간 경비를 섰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시체를 럼만 가지고 방부처리한 것도 아니고, 몰약 등 여러가지 방부제를 섞었기 때문에 사람이 마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넬슨 제독의 공적과 명성을 감안해보면, 당시의 수병들이 그런 신성모독과도 같은 짓을 저지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대에서도 넬슨 제독은 나폴레옹을 엿먹인 대제독이자 애국자로 명성이 드높았다. 만약 시신을 럼에 절였고 그 술통 속 럼이 줄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아마 알콜이 항해 기간 중 일부 증발해서 수위가 내려간 것이 와전됐을 가능성이 높다. 제조 과정에서도 오크통 등에 술을 넣으면 시간이 갈수록 증발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양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양조업계에선 이걸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

레드코트로 유명한 전열보병 시대의 영국 육군에게도 럼은 중요한 지급품 중 하나였다. 해군처럼 물을 대신하거나 추위 또는 더위를 잊게 하는 용도, 마취제 등의 의약품 목적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의 돌격 직전에 병사들을 두려움을 잊게 하고 더욱 거칠게 만들어 겁쟁이도 잘 싸우게 만드는 용기의 물약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전통은 제1차 세계 대전 때도 이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영국군과 영국군의 영향을 받은 호주군, 캐나다군 등은 전쟁터에서 마시는 술에 대해서 미군, 자위대, 한국군 등에 비해 꽤나 관대한 편이다. 주취 때문에 임무를 수행 못하게 되거나, 기갑 병과 장병들이나 비행 중인 전투기 조종사처럼 안전 문제로 음주가 금지된 경우에는 음주 적발 시 무겁게 처벌하지만, 보병과 같이 소량의 음주가 안전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작은 병과의 경우 자기 임무를 잘 하면서 적당히 마시면 크게 상관하지 않는 정도이다.

비단 영국군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음주에 관대한 가톨릭의 교세가 강한 이탈리아군, 프랑스군은 반주로 와인과 같은 저도주를 적당량 마시는 것은 봐줄 정도인데, 음주를 죄악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개신교의 교세가 강한 미군과 북유럽계 군대들에서 근무 중 음주를 철저히 금지하는 것과 비교하자면 매우 관대한 편이다. 특히 이탈리아군은 장병들의 식사 만족도를 높이고 사기를 고양하기 위해 전투식량에도 리큐르 약간을 식전주 혹은 입가심 용도로 넣는다.

 

한국에서의 럼

한국에서는 칵테일의 베이스 이외에도 제과제빵에 널리 쓰이는 술로 잘 알려져있다. 특유의 향기를 이용하여 밀가루, 계란 등의 비린내를 잡는 데 사용한다. 따라서 굳이 럼이 없어도 빵을 만들 수는 있고 럼 대신 다른 하드리커로 대체할 수도 있다. 홈베이킹에서는 아래의 캪틴큐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으로 크랜베리나 건포도를 럼에 절여서 쓰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아예 TV광고에 대놓고 "뢈~"이라고 했던 캪틴큐 덕분에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이 캪틴큐는 제대로 된 럼은 아니고 20% 미만의 럼 원액에 주정, 합성 럼향을 첨가한 대중 양주였는데, 91년 리뉴얼되고 나서 20%의 럼 원액도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캪틴큐는 2015년 생산이 중단되기까지 국세청 통계상 매우 꾸준하게 잘 팔려주는 술이었다. 우선 제과/제빵용으로 쓰였는데, 반죽에 들어가는 달걀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원래 제대로 하자면 진퉁 럼을 써야 겠지만, 아무래도 단가 문제가 있어서 이걸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가짜 양주를 제조하는 범죄 행위에 악용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대한민국 검찰청과 대한민국 경찰청에서는 캪틴큐의 매출량으로 가짜 양주의 생산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2015년 연말을 끝으로 생산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특징

증류주치고는 숙취가 상당한 편이다. 연속증류 후 여러 번의 필터링을 거치는 보드카나 약용식물로 향을 내는 진이나 오래 숙성시켜 향도 낼 겸 불순물도 거르는 위스키와 달리, 럼은 원재료인 사탕수수 향 그 자체가 주된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에 불순물을 그리 꼼꼼히 거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제대로 숙성시킨 럼은 덜한 편. 이는 역시 원재료인 아가베 향이 특징인 데킬라도 비슷한 경우이다.

어떤 증류주건 잘 숙성되지 않은 싸구려는 숙취가 심한데, 럼과 데킬라는 위스키와 달리 최저 숙성연한이 정해져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숙성 안 된 싸구려를 마시면 당연히 나쁘다. 반면 잘 숙성시키거나(aged rum이나 reposado/anejo급 데킬라) 이름 있는 회사에서 만드는 것들은 white/blanco 수준의 것들도 괜찮다. 반면 보드카는 기본적으로 숙성이라는 게 없기 때문에, 숙취를 결정하는 건 여과를 얼마나 잘 했느냐의 차원.

 

브랜드

세계적인 럼 제조사인 바카디가 유명하며, 하바나 클럽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 외 엄청나게 많은 브랜드가 있는데 프리미엄급 럼으로는 마투살렘, 자카파, 플랜테이션 등이 유명하다. 엔트리급은 브랜드별로 이미지가 비슷한 편이나 자카파 같은 경우 당밀이 아닌 사탕수수 전체를 발효시켜 제조하는 것이라 맛이 상당히 깊지만 럼 특유의 느낌은 적다는 평. 참고로 푸에르토리코 럼은 바카디 151은 알코올 도수가 무료 75.5도로,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었던 술 중에서는 가장 도수가 높다. 이렇게 도수가 높은 럼을 오버프루프 럼이라고 한다.

 

기타

럼은 16세기부터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에 진출하면서 북미 대륙의 원주민들한테도 전해졌다.

북미 대륙으로 온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상대로 그들이 채집한 모피를 사들이는 무역을 했는데, 모피를 사는 대가로 원주민들한테 총 그리고 자신들이 마시던 럼이나 위스키 같이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주었다. 왜 돈이 아닌 총과 술을 주었느냐 하면, 원주민들에게 유럽의 돈은 그들 사회에서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총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사냥할 때 유용했으며, 술은 그들의 입맛에도 맞아 음주를 즐겼기 때문이었다.

북미 원주민들은 럼을 '불의 물(파이어 워터)'이라고 불렀는데, 럼 같이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마시고 나면 이내 뱃속에서 불처럼 뜨거운 기운이 올라온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럼은 북미 원주민들한테 나쁜 영향을 끼쳤다. 우선 북미 원주민들은 선천적으로 간에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가 적은 것은 둘째치고 알코올 중독 증상에 대한 이해, 술에 대한 경험이 적어서 유럽인들보다 알코올 중독에 취약했다. 이런 원주민들이 유럽인들로부터 받은 도수가 높은 럼을 마시게 되자, 얼마 못가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알콜 중독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리고 알콜 중독자가 된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 구입한 총을 가지고 비버 등을 사냥하면서 모피 자원을 급속도로 고갈시켰으며, 이후 모피 동물을 더 사냥하여 더 많은 술을 구입하기 위해 이웃 부족들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인구가 급속히 감소하고 대신 백인 정착지가 늘어났다. 모피 전쟁을 벌이던 원주민 세력이 몰락한 이후에는 원주민 상당수가 싼값에 물품을 넘기고 파산하여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하거나 여성들은 매춘을 하여 혼혈을 낳는 등의 착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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